"보라, 기억해야 할 죽음을" - 요셉 쿠델카(Josef Koudelka)"보라, 기억해야 할 죽음을" - 요셉 쿠델카(Josef Koudelka)

Posted at 2010. 8. 13. 00:18 | Posted in 문화



남자가 시계를 보고 있다. 아니, 시계를 보고 있는 것인가, 저기 앞쪽을 보고 있는 것인가? 저기 멀리 어딘가에서 무엇이 나타날 것만 같다. 도로 위의 선로들은 깊게 패인 자국처럼 보인다. 양쪽에는 건물들이 한 줄로 꽉 들어차 있다. 한가운데 도로는 저 멀리까지 뻥 뚫려 있다. 도로가에는 자동차들이 버려진 듯이 세워져 있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 흐린 날씨인 것 같다.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만 같다. 고요하고 적막하다. 공기는 바싹 말라있다. 침을 꼴깍 넘어 삼킨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남자의 시계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등 뒤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흐른다.

사진 속의 모든 대상은 멈추어 있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시계 속의 초침뿐이다. 거리 양쪽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이 만드는 굵은 직선은 한 점에서 모여 시선을 집중시킨다. 한편 도로 위의 얇은 곡선들은 다시 눈을 난잡하게 어지럽힌다. 시계를 찬 손의 주먹은 꼭 쥐어져 사진 가운데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시선이 모이는 것 같으면 다시 흩뜨리고, 흩어진 것 같으면 다시 두껍게 잡아 이끈다. 흑백 톤의 사진은 분위기를 더욱 고요하고 긴장되게 만드는 듯하다.

1968년은, 체코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발생한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이 시작된 해이다. 이 민주화 운동은 마르크스ㆍ레닌주의로부터의 이탈이라는 구실로 침공한 20만 바르샤바 조약군에 의해 진압되고 만다.

비극이었다. 요셉 쿠델카는 이 과정을 모두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수많은 난민들이 발칸 반도를 떠돌게 되었고, 이름 모를 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조국이 파괴되고 유린되어 가는 과정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았을까?

쿠델카의 사진은 감정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쿠델카는 대상을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다. 스스로 대상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우수에 젖은 눈으로 장면을 거친 흑백 계조 속에 담아낸다. 사진은 차갑고 메마르고 건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심장이 뛰고, 목구멍에서는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코끝이 찡하다. 사진 속에서는 보여지지 않는 것들이지만 마음속에서는 느껴진다. 손목에 찬 시계는, 다해가는 조국의 운명을 나타내는 복선이었을까?

프라하의 봄이 진압되고 2년 후, 쿠델카는 체코를 떠나게 된다. 20년 동안이나 집도 없이 방랑하며 집시들의 모습을 렌즈 안에 담는다. 끝없는 고독과 상실을 느끼며, 돌아갈 곳도 없이 그는 오랜 여행을 떠났다. 버려진 땅에서, 소외당했지만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소박한 시민의 삶을 일관성 있는 시각으로 기록해왔다.

20년이 지난 후, 1990년 쿠델카는 마침내 체코로 돌아오게 된다. 공산주의와의 이념 전쟁으로 피폐해졌던 그 때의 폐허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진정한 프라하의 ‘봄’이 찾아온 것이다.

정지되어 있는 사진. 나는 이 사진을 보며 심장을 도끼로 내리친 것 같은 강렬한 충격을 느끼고 말았다.

참고문헌
[사진사드라마 50: 영화보다 재밌는 사진 이야기](저자 진동선, 도서출판 푸른세상, 2003), 3부 32. 요제프 쿠델카 - 고독한 유랑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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