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원공고를 나왔다나는 수원공고를 나왔다

Posted at 2010. 6. 29. 00:14 | Posted in 원동력


나는 수원공고를 나왔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했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축구 하나만을 보고 살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장 프로에 입단할 생각만 했다. 그런데 대기업 프로축구단 테스트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난 그때 별 볼일 없는 까까머리에 말라깽이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프로 입단을 희망하는 풋내기 축구선수가 어디 나뿐이었겠는가?        
수십, 수백 명의 학생 중에서 계산 빠른 프로축구단의 감독이나         
스태프의 눈에 들려면 뭔가 남들과는 달라도 분명히 달라야 했다.        
키가 크거나 체격 조건이 좋거나, 그것도 아니면 공격이건 수비건        
여하튼 특별히 잘하는 장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런 조건 중에        
하나도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외모도 평범하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좌중을 휘어잡는 스타성마저 없었으니 그들이 탐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학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관동대, 동국대할 것 없이 다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님 눈에 들어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까지 내 인생은 늘 그랬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니 ‘깡다구’        
하나로 버티는 것이었고, 남이 보든 안 보든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인        
줄 알고 살았다. 덕분에 허정무 감독님이 사령탑으로 계시던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고, 얼마 안 있어 일본 교토팀 선수로 스카우트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월드컵 평가전에 우리나라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 당시 나는 일본에서 활동했던 탓에 국내 선수 중에 가깝게        
지내는 동료도 딱히 없어 늘 혼자 다녔다. 나를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고 각기 포지션에는 이미 이름난 선수들이 꽉 들어차 있어         
갓 스물 넘은 어린 나에게까지 기회가 올 것이란 욕심은 애당초        
부리지도 않고 있었다. 경험 쌓는 거고 본선 때 한 경기 뛰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평가전에 임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평가전에서 나에게 예상 외로 많은 기회를        
주었다. 처음엔 10분 정도 시합에서 뛰게 하더니 다음번에 20분을,         
그 다음번엔 전반전을 모두 뛰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감독님은        
평가전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나를 시합에 내보낼 뿐 다른 언질은        
전혀 없었다. 언어소통이 안 돼 감독님이 하는 말 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오른쪽(right), 왼쪽(left)'뿐이라 다른 말씀을 하셨다         
해도 알아듣지 못했을 테지만 언론도 나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난 언제나처럼 눈에 띄지 않는 선수였을 뿐이고, 감독님의        
작전지시나 전략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축구와는 또 다른 세계라        
그걸 이해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력도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미국 골드컵 때라고 기억되다. 나는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 시합에 나가지 못해 텅 빈 탈의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여야 할 그 중요한        
때에 하필이면 부상을 당했나 싶어 애꿎은 다리만 바라보며 맥이        
빠져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히딩크 감독님이 통역관을 대동        
하여 `나타났다.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신 감독님은 영어로 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몰라 통역관을 바라보았다.         


“박지성 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대요.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얼떨떨했다.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감독님은 뒤돌아나가셨고 나는        
그 흔한 ‘땡큐’ 소리 한 번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늘 멀리 있는        
분 같기만 했는데, 그런 감독님이 내 곁에 다가와 내 정신력이 훌륭        
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더욱이 그 말은 내 심중을 꿰뚫고 있었다. 정신력,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일지라도 오래전부터 내가 믿어왔던 것은 죽는 한이 있어도        
버티겠다는 정신력이었다.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때 축구부 감독님이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선수들에게 자신이 올 때까지 팔        
굽혀펴기를 하라고 지시하곤 휑하니 가버린 일이 있었다. 다른 친구        
들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을 때도 나는 감독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자정이 넘도록        
팔굽혀펴기를 했다. 비록 술에 취해 한 말일지언정 감독님의 지시라        
따라야 한다는 고지식한 성격에다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겨 했던 일이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나는        
평발이다. 한 병원 의사는 내 발을 보고 평발인 선수가 축구를 하는        
것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라 말하기도 했다. 난 그렇게 보잘것        
없는 나의 조건을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눈에        
띄지 않는 정신력 따위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현란한 개인기와 테크닉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여드름투성이 어린        
선수의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정신력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해주셨던 것이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열 번 스무 번 축구의 천재다,        
신동이다 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내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칭찬만 듣고 자란 사람은 칭찬 한 번 더 듣는다고 황홀감에        
젖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 칭찬을 듣는 순간머리가 쭈뼛 설만큼        
나 자신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월드컵 내내 그날 감독님이 던진        
칭찬 한마디를 생각하여 경기에 임했다. 내 정신력이면 분명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공을 몰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달렸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달갑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님이라면 어디선가 또 나를 지켜보며        
조용한 눈빛으로 격려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만약 내가 히딩크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이름 꽤나 알려진 유명 스타가 되었        
다거나 부모님께 45평짜리 아파트를 사드릴 만큼 넉넉한 형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감독님이 던진 채 1분도 안 되는 그 말        
한마디는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나머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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